[뉴스]‘무관의 털보 도사’ 하든, 드렉슬러 행보 따를까?
국내 팬들에게 ‘털보 도사’라는 애칭으로 통하는 제임스 하든(33‧196cm)은 NBA를 대표하는 테크니션 중 하나다. 엄청나게 빠르거나 폭발적인 운동능력을 자랑하는 선수는 아니지만 템포를 조절하고 상대의 리듬을 빼앗는 특유의 플레이 스타일을 통해 한시대를 풍미하고 있다. 이를 입증하듯 정규시즌 MVP 1회, 득점왕 3회, 어시스트왕 1회, 퍼스트팀 6회 등 화려한 수상경력을 자랑한다.
하든의 플레이는 독특하면서도 부드럽다. 느리게 툭툭 드리블을 치는듯 하다가도 한순간에 상대의 중심을 빼앗아버리고 돌파를 성공시키는가하면 1, 2번이 모두 가능한 듀얼가드답게 온통 자신의 공격에 시선이 집중된다 싶으면 화려하고 날카로운 패스로 수비에 균열을 내버린다.
돌파하는 척하다가 던지는 스텝백 3점슛에, 파울을 유도해 다수의 자유투를 만들어내는 능력 또한 일품이다. 워낙 공격의 다양성과 완성도가 높은지라 한창 기량적으로 물이 올랐을 당시에는 ‘공격 스킬 만큼은 조던급이다’는 극찬까지 받았다. 케빈 듀란트, 스테판 커리 등과 비교해도 멀리지않는 명성을 뽐냈다.
전성기에서 살짝 내려오기는 했으나 여전히 하든은 잘하고 있다. 현재까지 25경기에서 평균 21.8득점, 11어시스트, 6.5리바운드, 1.4스틸로 전방위 활약을 펼치고 있다. 하든이니까 ‘예전만큼은 아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지 어지간한 선수같으면 팀내 대표급 선수로 손색 없는 성적이다. 한창 때에 비해 득점은 떨어졌지만 스탯의 다양성에서는 지금이 더 나은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들어 리그 최고 선수로 하든을 언급하는 경우는 많이 줄어든 모습이다. 커리는 지난 시즌을 지배했고 듀란트 역시 부상전까지 회춘한 듯한 활약을 펼치며 브루클린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듀란트는 현재 올스타 투표에서도 선두권을 유지하며 다시금 지구방위대 대표 공격수로서의 명성을 되찾아가고 있다.
하든이 동시대 경쟁자들에 비해 위상에서 밀리고 있는 배경에는 우승 여부가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다. 존 스탁턴, 찰스 바클리, 레지 밀러 등 무관의 제왕들의 경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승을 경험했냐 안했냐의 차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상당한 격차로 작용한다. 어찌보면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었겠으나 칼 말론, 게리 페이튼 등이 완전한 프랜차이즈 스타를 포기하고 전당포 라인업에 참가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어쩄거나 하든도 이제 적은 나이는 아니다. 막연하게 '언젠가는…'이라는 생각을 하기에는 남은 선수 생활이 길지않다. 하든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는지라 진작부터 우승을 향한 열망을 숨기지 않았다. 휴스턴 시절 크리스 폴과 역대급 가드진을 이뤄 우승에 도전했고 당시 최강팀으로 불렸던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를 벼랑 끝까지 몰아붙였으나 중요한 순간 부상 악재가 터지며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이후 브루클린에서 케빈 듀란트, 카이리 어빙 등과 역대급 빅3를 이루었으나 이번에는 경기외적으로 불협화음이 반복되며 결국 필라델피아로 떠나고 말았다. 조금씩 기량이 떨어져가고 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어쩌면 지금이 우승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더 지난 말년에 좋은 멤버들과 함께 우승을 맛보게되는 행운이 찾아올지 모를 일이지만 본인이 주축이 되어 우승하는 것과 그렇지않은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보통의 스타 플레이어도 아니고 하든같은 역대급 레벨에서는 더욱 그렇다.
어찌보면 하든 입장에서 최상의 시나리오는 1990년대를 풍미한 특급 슈팅가드 클라이드 드렉슬러(60‧201cm)의 행보를 따르는 것이다. 동시대 마이클 조던에게 가리기는 했지만 드렉슬러 또한 한시대를 풍미한 최고의 2번 중 한명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글라이더’라는 닉네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에어’ 조던, ‘닥터J’ 줄리어스 어빙, ‘에어 캐나다’ 빈스 카터 등과는 또다른 우아한 공중쇼를 보여주던 인물이었다.
자유투 라인 인근에서 마치 글라이더가 날아가듯 부드럽게 뛰어올라 덩크슛을 꽂아넣었으며 동료가 띄워준 공을 공중에서 한손으로 잡아 그대로 앨리웁 덩크로 연결시키는 장면도 자주 보여주었다. 조금의 빈틈이라도 보인다싶은 순간에는 빅맨들을 상대로도 주저함없이 인 유어 페이스 덩크를 시전했다. 동시대 무수한 덩크 기술자들 사이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덩크슛 마스터였다.
높은 탄력을 앞세운 리바운드 능력도 발군이었으며 거기에 더해 외각슛과 어시스트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포틀랜드 블레이저스 시절 에이스로서 팀을 이끌며 꾸준하게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았으며 2번이나 NBA 파이널 무대에 올랐으나, 아쉽게도 각각 디트로이트, 시카고에 막혀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다.
기량적으로 하향세를 타고있던 상황에서 무관으로 커리어를 마칠 수도 있겠다는 위기를 느꼈던 것일까. 드렉슬러는 구단에 트레이드를 요청했고 휴스턴 로키츠로 둥지를 옮긴다. 휴스턴에는 리그 최고 센터 중 한명인 하킴 올라주원이 버티고 있었는데 드렉슬러는 넘버 2로서 그를 도와 원투펀치를 형성해 꿈에 그리던 파이널 우승을 맛보게 된다.
공교롭게도 현재 필라델피아에는 ‘제2의 올라주원’으로 불리는 조엘 엠비드(28‧213cm)가 간판스타로 위용을 뽐내고 있다. 하든 역시 그를 인정하고 팀내 2인자로서 1옵션 엠비드와 함께 원투펀치를 구성 중이다. 개인기에 의한 득점이 많았던 한창 때와 달리 어시스트에도 주력하는 등 많은 부분에서 맞춰주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현재 필라델피아는 25승 16패(승률 0.610)로 동부컨퍼런스 5위를 달리는 중이다. 1위 보스턴과는 차이가 제법 나지만 2위 브루클린까지는 불과 2게임 차이인지라 제대로 연승만 타면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다. 아직까지 무관에 그치고있는 하든이 엠비드라는 최고의 빅맨과 함께 우승 갈증을 풀 수 있을지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